내 인생을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 에스더

대단한 돼지 에스더

출처 | 페이스북 @estherthewonderpig

“이런, 우리 집에 돼지가 있네. 꿈에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반려동물의 사전적 의미는 이렇다. 사람이 정서적으로 의지하고자 가까이 두고 기르는 동물. 개, 고양이, 새 따위가 있다. 즉, 돼지와 정서적으로 의지하고 가까이 둘 수 없다고 생각하면 돼지는 그냥 ‘동물’일 뿐이다. ‘집에서 키우는 미니돼지’라는 말을 들었다고 해보자. “반려돼지라고? 집에서 돼지를 키울 수 있어?”, “돼지가 가족이 될 수 있어? 개나 고양이는 몰라도···.”라는 반응이 대부분일 것이다. 동물을 사랑한다고 생각하는 나도 이 책장을 넘기기 전에는 그렇게 생각했다.

“미니돼지라고? 어휴, 얼마나 사랑스러울까. 솔직히 미니돼지를 키우기 싫은 사람이 어딨어. 다 키우고 싶지만 사정이 안 되는 거지.”

대단한 돼지 에스더 속 스티브는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미니돼지라는 단어만 들어도 가슴이 설레고 사랑에 빠져버리고 만다. 하지만 데릭은 아직은 ‘반려동물’만을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데릭이 마음속에서 돼지를 반려동물 반열에 올리는 과정은 상당히 흥미롭게 그려진다. 마치 아이돌에게 입덕하는 과정과 비슷하다. 처음엔 입덕 부정기가 온다. “내가? 돼지를 좋아한다고? 아니야 말도 안 돼. 돼지는 절대 안 돼!” 하지만 아기 돼지가 데릭 품에 안겨 한 번 꿀꿀 하는 순간, 돼지에게 귀여움을 느낀다면 그걸로 게임 끝. 데릭은 그렇게 에스더에게 입덕하게 된다.

출처 | 페이스북 @estherthewonderpig

내 인생을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 에스더

돼지와 함께 산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미니돼지가 아니라 300kg이 넘는 사육용 돼지와 사는 건 더더욱 쉬운 일이 아니다. 이 책은 절대 돼지를 반려동물로 입양하라는 책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책을 읽은 후에는 나는 돼지와 함께 살 수 없음을 확신하게 될지도 모른다. 돼지는 배변 교육이 쉽지 않고, 제트 여객기와 같은 소리로 울부짖는다. 에스더는 12리터의 물을 마시고 그 만큼을 오줌을 싸고, 온 몸에 오물을 묻히고 집안 여기저기를 뛰어다니기 일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스더는 너무 사랑스럽다. 매일 아침 발굽소리를 내며 온 집안을 뛰어다녀도, 하루종일 사고를 쳐서 두 아빠는 휴가 조차 떠날 수 없어도 에스더는 그저 사랑스러운 꿀꿀이 공주이다. 더불어 에스더라는 존재는 두 아빠의 삶을 송두리 째 바꿔두었다. 스티브는 부동산 중개인으로, 데릭은 마술사로 일하던 두 사람은 농장동물을 구조하고 보살피는 일을 하게 되었다. 고기를 좋아하던 두 남자는 채식주의자가 되었다. 그렇게 에스더는 그들의 구원자가 되었다.

출처 | 페이스북 @estherthewonderpig

내가 채식주의자가 될 수 있을까?

에스더의 이야기를 읽는 내내 영화 ‘옥자'(Okja, 2017)가 생각났다. 삼겹살, 목살, 베이컨, 소시지로 사용될 목적으로 만들어진 슈퍼 돼지 옥자는 강원도 산골에서 미자와 함께 살아간다. 어느 날 글로벌 기업이 나타나 옥자를 뉴욕으로 끌고 가고 미자는 옥자를 구출하기 위해 여정을 떠난다. 영화 옥자를 보면서 죄책감에 시달렸다. 늘상 먹던 돼지일 뿐인데, 도살하는 장면은 직접적이진 않지만 너무 충격적이어서 돼지를 먹는 내가 야만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했다. 동시에 어느 정도는 영화에 거부감이 생겼던 것이 사실이다.

‘에스더 효과’는 조금 달랐다. 스티브는 에스더의 페이스북 페이지를 만들었고, 순식간에 138만 팔로워가 생겼다. 스티브와 데릭은 에스더의 일상 사진을 올리거나 채식 레시피를 공유하였다. 팔로워들은 에스더를 보고 완전 채식을 시작하였다. 사람들은 채식이라 부르지 않고 그것을 ‘에스더 효과’라 불렀다. 에스더 효과는 어떠한 사상을 전달하거나 논리가 있는 것은 아니다. 단지 귀여운 에스더의 일상 사진을 보여줄 뿐이다. 에스더와 유대감이 생긴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베이컨과 에스더를 연관시켰고, 에스더를 먹을 순 없어서 채식을 시작하게 되었다. 너무나 부드럽고 다정한 캠페인이다. 나비의 작은 날갯짓이 날씨 변화를 일으키듯, 돼지 한 마리의 미소는 많은 사람에게 따뜻함을 전염시켰다. 생명은 그런 것이다. 존재만으로도 영향을 끼치는 것.


도서명 : 대단한 돼지 에스더
지은이 : 스티브 젠킨스, 데릭 월터, 카프리스 크레인
옮긴이 : 고영이
출판사 : 책공장더불어
출간 : 2018년 10월 23일

스티브는 오랜만에 연락이 닿은 친구에게 미니돼지 한 마리를 입양하겠냐는 제안을 받는다. 집에는 이미 개 둘, 고양이 둘이 있고, 함께 사는 데릭이 새로운 반려동물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아기 돼지를 덥석 데리고 온다. 그때는 알지 못했지만 이 행동으로 그들의 인생은 영원히 바뀌게 된다.
아기 돼지는 미니돼지가 아니고 사육용 돼지라는 것을 곧 알게 되었다. 운동화만 했던 아기 돼지는 3년도 채 되지 않아서 300킬로그램이 나가는 엄청나게 큰 돼지로 자란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맞닥뜨리게 된 두 남자와 한 마리의 돼지는 수차례의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진정한 성장통을 치르고 앞으로 나아간다.
오랜만에 연락이 온 친구에게 속아 얼떨결에 에스더와 살기 시작한 것처럼 지인들에게 에스더 소식을 전하려고 아무 생각 없이 시작한 페이스북 페이지 때문에 이 가족은 단숨에 138만 팔로워를 거느리는 유명인이 된다. 그리고 돼지와 사는 것이 불법인 도시에서 더 이상 살 수 없게 된 것을 인정한 이들은 다시 한 번 인생을 바꿀 결정을 한다. 페이스북 페이지를 찾는 온라인 이웃들의 도움으로 농장을 사서 ‘오래오래 행복한 에스더 농장동물보호구역’을 열고, 버림받거나 학대받은 농장동물을 구조하고 돌보는 일을 시작한 것이다.
매 페이지마다 재미와 유머가 가득한 이 책은 재미있고 사랑스러운 이야기로 독자들의 삶을 변화시키려고 단단히 벼른다. 돼지와 사랑에 빠질 마음의 준비를 하고 책을 펼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