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에 걸린 사람과 암에 걸린 개에 대한 단상

암 전문 수의사는 어떻게 암을 이겼나

나는 살면서 누군가의 죽음을 깊이 있게 경험해본 적이 없다. 내가 깊은 슬픔을 느낄 만큼 가까운 사람의 죽음 말이다. 내가 태어나자 금쪽 같은 외아들 몰래 요플레를 감춰두셨다던 외할아버지는 내가 말을 하기도 전에 떠나셨다. 내 아버지 역시 내가 5살쯤 되었을 때 심장병으로 돌아가셨는데, 내가 너무 어리기도 했고 일 때문에 바빠서 그랬는지 아버지와 살을 맞대고 있었던 기억이 거의 없다. 친할머니께서는 내가 학생일 때 운명하셨는데, 왕래가 거의 없어 예나 지금이나 내겐 그저 동화 속 요정 대모님 같은 느낌으로 남아있는 분이다.

잔인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나는 앞서 말한 내 가족들의 죽음에 별다른 감정이 없다. 그분들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어서일 테지… 그럼에도 그들이 마지막까지 나를 사랑했다는 사실을 상기할 때면 늘 코끝이 찡해진다. 외조부께서는 결국 요플레를 훔쳐 먹은 외아들에게 회초리를 드셨단다. 아들 한 명을 낳으려고 딸을 넷이나 낳았던 분이었다. 친할머니는 임종 직전까지 나를 찾으셨다고 한다. 내 아버지는 말할 것도 없이 나를 이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사람 중 한 명이었을 것이다.

기억 속 희미한 죽음조차 때론 이렇게 사람을 감상적으로 만드는데 내가 정말 사랑하고 소중하게 여겼던 사람이 암에 걸려 죽는다면 어떨까? 아니, 당장 내일 내가 암에 걸려 죽게 된다면? 실감이 나지 않는다. 나 혹은 가까운 사람이 암에 걸린다는 것을 상상하는 건 둘째치고 ‘암’이라는 것 자체를 떠올리기도 힘들다.

나는 이 책이 그다지 마음에 와닿지 않는다.

나는 암에 걸려 생사를 오가는 일을 이해하기엔 경험도, 철도 없다. 그걸 내게 알려줄 수 있는 사람도 없다. 죽은 자는 말이 없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사람은 말을 아낀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고작 암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말과 글을 통해 불구경하듯 지켜보는 것이다.

심지어 개의 죽음조차도 그렇다. 나는 내 부족한 반려 지식 때문에 그동안 키우던 반려견들을 모두 잃어버리고 말았다. 내 귀여운 개가 귀여운 ‘엄마 개’가 되는 순간은 경험했어도 반려견이 무지개다리를 건너는 모습을 지켜본 경험은 없다. 책 속에서는 암과 싸우던 반려견의 마지막 순간을 따뜻한 입맞춤과 포옹으로 장식하는 순간들이 자주 나온다. 나는 그 느낌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그저 암에 걸린 개를 살리려고 애를 쓰는 반려인의 모습과 수술 직후 약에 취한 상태에서도 반려인에게 꼬리를 흔드는 개의 모습에서 안타까움을 느낀다.

내가 엄마에게 늘 하는 말이 있다. 진짜 사랑은 ‘죽을 만큼 배가 고파도 상대방을 위해 밥상에 놓인 생선 가시부터 발라주는 것’이라고. 암에 걸린 반려견과 그런 반려견을 둔 반려인은 각자가 진 마음의 짐을 신경 쓰기보다 상대를 더 걱정한다. 진정한 사랑의 또 다른 모습이다.

문득 내 반려견이 위염에 걸려 구토를 하다가 놀란 나를 안심시키기 위해 꼬리를 흔들던 모습이 떠올랐다. 이런 기억들이 떠오를 때면 내 반려견의 마지막 순간까지 반드시 함께하겠다는 결심이 들다가도, 영원히 그런 순간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혼란스럽기도 하다.

책을 덮으며 암에 대한 사람의 대처와 개의 대처 사이의 간극에 대해 곱씹어본다. 책 속 주인공은 개를 살리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하지만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그저 안타까워하는 것으로 끝내고 만다. 안락사가 오히려 그들을 위하는 것이라면서 말이다. 그러나 자신이 갑상샘암에 걸리자 그녀는 병원의 시스템과 의료진의 태도, 자신의 삶을 위협하는 모든 것에 엄격한 기준을 들이댄다. 타인의 최선을 평가하는 것으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표출하는 것이다. 생사와 관련된 문제를 오로지 사람에게 맡겨야만 하는 개와 달리, 사람은 스스로 죽기 아니면 살기로 매달려야 하기 때문일까.

나는 이 책에 공감하지 못한다. 다만 죽음의 문턱에 선 순간에도 나를 향해 꼬리를 흔드는 반려견의 친절함이 어쩌면 살려달라는 간절한 애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이 저리다. 힘겨운 항암 치료 후에도 맛있는 간식에 꼬리를 흔들며 몸을 일으키는 아이들의 ‘지금을 사는 힘’에 감탄하고 또 숙연해진다.

우리는 항상 죽음을 곁에 두고 살지만 그것을 직면하려고 하지는 않는다. 이 책은 죽음을 잊고 사는 우리가 그것을 상기할 수 있도록 해준다. 언제부터 그 자리에 있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 냉동실 안 검은 봉지같은 불편한 ‘죽음’을. 암으로 인한 것이든 자연스러운 죽음이든, 반려견이 눈을 감는 순간까지 행복으로 채워질 수 있기를.


도서명 : 암 전문 수의사는 어떻게 암을 이겼나
지은이 : 세라 보스턴
옮긴이 : 유영희
그림 : 김영희
출판사 : 책공장더불어
출간 : 2018년 10월 11일

세라 보스톤은 캐나다의 유명 종양외과 수의사이다. 매일 개, 고양이의 암을 제거하는 수술을 하던 저자는 어느 날 자신이 감상샘암 진단을 받는다. 진단부터 수술 후 완치까지 수의사의 눈으로 본 사람 의료 체계는 우스꽝스럽다. 캐나다의 무료 의료체계도 미국의 의료체계도 이해 못할 부분이 너무 많았다.
암을 치료하는 긴 여정을 통해서 저자는 자신에게 전적으로 생명을 맡겼던 동물 암 환자들이 얼마나 현명한지 깨닫는다. 저자는 우리가 사랑하는 반려동물이 들려주는 질병과 삶의 기쁨에 관한 유쾌하고 따뜻한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암과의 싸움에서 이기든 지든 인생은 짧으니 직관을 믿고 자신의 옹호자가 되어 그 과정에서 행복하라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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