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주들의 종아리를 때리는 영화 ‘베일리 어게인’

견생 4회차, 삶의 의미를 깨닫다.

*이 글에는 영화 ‘베일리 어게인’에 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내 반려견 콩이와 대화를 많이 하는 편이다. 물론 늘 내가 말을 걸고, 콩이는 대답 대신 고개를 갸우뚱 거리거나 얼굴을 핥아주는 게 끝이지만… 개는 말을 못하기 때문에 반려견과 대화를 하다보면 혼잣말 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들 때가 많다. 그리고 이내 ‘개도 사람처럼 말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욕구로 자연스럽게 이어지곤 한다.

출처 | 씨나몬㈜홈초이스

영화관에 갔다. 넓다란 스크린에 릴레이로 이어지는 개봉 예정작들을 무심코 바라보다가 ‘베일리 어게인’ 예고편이 나오자 눈이 번쩍 뜨였다. 베일리라는 이름의 개가 여러 번의 환생을 거친다는 내용이란다. 개봉하면 꼭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둘러 예매를 하고 영화관으로 향했다.

개는 생각보다 많은 것을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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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이는 심적으로 굉장히 힘들었던 시기에 데려온 아이다. 힘든 상황은 푸들이 가진 공감능력과 잘 맞물려 성공적인 교감을 만들어냈다. 우리는 서로가 원하는 것, 필요한 것을 단번에 알 수 있다. 몰래 연애중인 나에게 ‘너 남자친구 생겼지?’하고 묻던 엄마처럼.

콩이는 다른 건 몰라도 내가 우는 건 기가 막히게 잘 알아낸다. 몰래 울고 있어도 귀신같이 알고 찾아온다. 신기한 건 내가 우는 이유에 따라 반응이 다르다는 것이다. 슬퍼서 울 때는 어떻게든 위로해주려고 하지만, 분노의 눈물을 흘릴 때는 그냥 내버려둔다. 이럴 땐 눈물에서 상황에 따라 다른 냄새가 나나 싶다.

“웃는 개가 어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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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개들은 사람의 감정과 생각을 냄새로 알아차린다. 예를 들자면 땀냄새를 통해 이성 간의 오묘한 분위기를 눈치채는 식이다. 이외에도 개들이 눈치채는 감정들은 생각보다 아주 다양하다. 영화를 보고 나니 개들이 예상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고, 때론 우리보다 더 많은 걸 느끼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어차피 쟤는 내가 뭐라고 하는지 몰라~’하며 반려견에게 재미로 욕을 하던 옛 지인이 생각난다. 지인이라고 부르기도 거북한 그 사람이 이 영화를 꼭 보길 간절히 바란다.

개의 행복은 주인의 삶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출처 | 씨나몬㈜홈초이스

나는 TV 프로그램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의 타이틀이 정말 마음에 든다. 세상에 나쁜 개가 없다는 건 결국 ‘모든 개들은 행복해질 자격이 있다’는 말로 연결된다. 하지만 영화를 보며 어떤 것을 누릴 자격이 있다고 해도 실제로 누릴 수 있는 지는 알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주인의 말 한 마디, 행동 하나에 모든 것이 결정되는 견생이란 편리해보이면서도 때론 가엾기 짝이 없다.

“인간은 개들이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하곤 해. 이별 같은 일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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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키우던 강아지를 잃어버린 적이 있다. 전단지도 붙이며 수일을 찾았지만 도저히 찾을 수가 없어서 몇 날 며칠을 울며 지냈다. 왜 그때 근처 유기견 보호소에 가볼 생각을 못했을까? 아직도 너무 후회가 된다.

아무튼, 그렇게 잃어버린지 몇 달쯤 된 어느날 꿈에 그 강아지가 나타났다. 집으로 돌아왔는데 현관문 앞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가족들이 귀가하면 항상 난리 법석을 떨던 녀석이었는데… 그렇게 한참 동안 눈인사를 하고 나서야 꿈에서 깨어났다. 오랜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그 꿈의 의미를 알았다. 하늘나라로 가기 전 내게 마지막 인사를 하기 위해 찾아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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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가 느끼는 행복감은 주인이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크게 달라지는 것 같다. 내가 키우던 강아지가 주인의 부주의로 실종되어 (순전히 내 예상이지만)무지개 다리를 건넌 것처럼, 영화 속 개들도 주인에 따라 무미건조한 삶을 살기도, 견맥(?)을 넓힐 기회를 상실하기도 하며 때론 유기견이 된다.

“이든을 행복하게 해주는 게 내 삶의 이유라고 생각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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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영화 속에서 개들은 절망하지 않는다. 개들의 목표는 ‘주인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저 주인과 함께하는 것만으로 만족한다. 반려견에게 해주는 것도 없으면서 ‘개 팔자가 상 팔자다’라고 외치던 내가 조금 부끄러워진다. 어쩌면 주인에 대한 개들의 사랑은 사람은 절대 알 수 없는 크고 넓은 것일지도 모른다.

견주들의 종아리를 때리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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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자들은 이 영화를 휴머니즘 가족영화라고 소개하지만, 내게는 ‘견주들의 종아리를 때리는 영화’였다. 영화를 보고 나니 반성문이라도 써야 할 것 같다. 나는 내 반려견을 만나 이렇게 행복한데, 그 아이도 나 때문에 행복할까? 만약 콩이가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다음 생에도 내 반려견으로 살고 싶을까? 내 개의 마음은 몰라도 내 마음은 확실하다. 나는 다음 생에도 콩이의 반려인으로 살고 싶다.

“내가 개로 살면서 깨달은 건 ‘즐겁게 살라’는 거야. 그저 지금을 살아. 그게 개가 사는 목적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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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일리는 영화의 마지막을 ‘즐겁게 지금을 살라’는 조언으로 장식한다. 반려견과 시간을 보내는 건 사람에겐 수만 가지의 즐거운 일들 중 하나지만, 개들에겐 인생 최고의 시간일 것이다. 그동안 미뤄왔던 것들을 한 가지씩 해보길 바란다. 베일리가 낡고 헤진 공이라도 주인과의 공놀이라면 세상을 다 가진 듯 좋아하던 것처럼, 지금 반려견에게 필요한 건 우리와 함께하는 시간이다.